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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문화

적대적 건축물

우주를 유영하는 조그만 돌 2025. 5. 16. 19:13

런던의 캠든 자치구 보도에는 캠든 벤치라는 이름의 콘크리트 벤치가 설치되어 있다. 앉는 바닥은 하나의 커다란 평면이 아니고 기울기와 크기가 다른 여러 개의 면으로 분할되어 있어 잠깐 앉을 데를 찾고 있다면 여러 비스듬한 면 가운데 하나를 골라 걸터앉으면 된다. 하지만 모서리가 있어 눕기에는 불편하다. 그냥 앉아 있어도 10분 정도 지나면 불편해진다. 그런데 이런 불편함은 우연이 아니다. 바로 그것이 이 공공 시설물을 만들고 설치한 도시 설계자들의 온전한 목적이기 때문이다. 캠든 자치구 의회는 기존의 벤치들이 노숙자들의 수면, 청소년들의 스케이트보드 연습, 방황하는 청년 무리들의 회합 등과 같이 일부 사람들이 저지르는 일탈 행위에 오용 악용되고 있다고 간주하였다. 그리하여 그 여지를 줄일 수 있는 벤치 디자인을 전문가에게 의뢰하였고, 그 결과 캠든 벤치를 설치하기에 이른 것이었다. 이 벤치는 설치된 목적대로 벤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탈 행위와 범죄를 줄이는 데 기여한 것으로 평가를 받고 있는 한편, ‘바람직하지 못한 사람으로 간주되는 이들을 배제하는 방향으로 설계된 적대적 건축물중의 하나라는 평가도 동시에 받고 있다.

 

캠든 벤치

 

 

 

@ 건축은 본래 적으로부터 무언가를 보호하고 지키기 위한 것, 즉 타자 배척과 같은 적대적 행위를 근본에 내재한 것이 아닌가? 근대적 건축물들은 담을 없애는 등 개방성을 강조하여 평등성과 비차별성을 강조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는 듯한데... 이처럼  특정 대상을 배척하고 차별하기 위해 만들어진 건축물과 디자인에 대한 비판적인 관점도 있다. 아무래도 이와 같은 공공재라면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비배제성이 필요할 듯하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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